GO! 마운틴
↑ [월간산]지난해 연말 완공되어 백아산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구름다리. 시원한 조망한 아찔한 고도감을 느낄 수 있는 산악현수교다.
전남 화순 백아산(白鵝山·810m)은 바람 따스한 날 올라야 할 산이다. 넓은 산꼭대기는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터졌지만 바람 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마당바위와 절터바위 능선 사이에 위치한 하늘다리는 완전히 허공에 노출되어 있어 늘 바람이 심하다. 튼튼한 구조물이지만 돌풍이 불면 아무래도 불안하기 마련이다. 가능하면 날이 좋을 때를 골라 백아산을 오르는 것이 좋다.
"계속 날씨가 좋았는데, 하필이면 산에 가는 날 추워졌네요."
광주에서 합류한 익스트림클라이밍센터 김미경(44) 센터장이 차에 올라타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봄기운 완연한 산자락에서 느긋하게 걷는 산행을 기대했지만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바람도 제법 심하게 불어 코끝이 시릴 정도로 추웠다. 그나마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맑은 하늘이 위안이 됐다. 올 겨울 들어 가장 맑은 날이었다.
광주에서 백아산은 그리 멀지 않았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20여 분 만에 곡성군 옥과IC를 빠져나온 뒤 계속 국도를 타고 화순군 북면으로 이동했다. 동광주에서 40여 분 만에 목적지인 북면 아산목장 부근의 덕고개에 도착했다. '백아산 등산로'라는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돌이 길 옆에 세워져 있어 산길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월간산]마당바위에서 지리산 방면을 조망하고 있는 등산객들. 이곳은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산 위의 평지다.
백아산의 첫 인상은 거칠었다. 흰 '백(白)', 거위 '아(鵝)'를 쓴 산 이름처럼 하얀 바위봉우리가 날카로운 암릉을 형성하고 있었다. 산정에 빼곡한 바위들이 뿜어내는 힘찬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게다가 높은 바위봉우리 사이에 '하늘다리'까지 걸려 있으니 더욱 강렬한 느낌을 줬다.
"오래 전에 백아산에 한 번 와봤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산도 변하는 모양입니다. 빨리 올라가보고 싶어요."
이번 산행에 함께한 김미경씨는 백아산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래서 바쁜 시간을 쪼개 취재팀과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동광주IC 부근에서 실내암장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젊은 시절 늘 암벽대회 상위권에 입상하던 광주를 대표하던 여성 클라이머였다. 광주산악구조대로 활동 중인 그녀는 유치원생을 키우는 주부지만 여전히 암장에서 회원들을 지도하는 현역 산꾼이다.
↑ [월간산]마당바위에서 본 남서쪽 풍광. 왼쪽 끝에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화순의 진산 모후산이다.
"주말에 워킹 산행을 많이 합니다. 암벽 등반도 즐기지만 요즘은 산정에서 느끼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더 좋더군요. 그런데 가까운 곳에 백아산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있고 있었네요."
마당바위 오름길의 솔숲 일품
덕고개에서 시작하는 백아산 오름길은 숲이 일품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춤을 추듯 구불거리며 가지를 뻗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빽빽한 나뭇가지를 뚫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완만한 산길 위에 어른거렸다. 쾌청한 하늘과 시원한 공기가 만들어내는 숲의 쾌적함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 [월간산]화순군 북면 소재지에서 500m 거리의 덕고개. 하늘다리로 오르려면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무난하다.
고도가 높아지며 소나무 숲이 성글어지고 활엽수림이 나타났다. 능선 위의 작은 삼거리를 지나며 시야가 터지고 백아산 정상부의 하얀 바위지대가 한층 가까워졌다. 마당바위에 걸려 있는 하늘다리의 파란색 기둥도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힘을 내서 마지막 된비알을 치고 올라 능선 위에 섰다.
찻길에서 시작해 한 시간 남짓 걸어 오르니 백아산 정상과 마당바위 사이의 안부에 도착했다. 특유의 하얀 바위들이 병풍처럼 주변을 둘러싼 곳이었다. 고갯마루 주변에 키가 큰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마당바위를 거쳐 하늘다리로, 우측으로 직진하듯 이동하면 약수터를 거쳐 백아산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일단 마당바위에 올라 백아산의 새로운 명물 '하늘다리'를 밟아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바위를 타고 올라야 했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계단길이 났네요."
↑ [월간산]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조성된 등산로를 오르고 있다.
조금 가파르긴 했지만 멍석까지 깔아둔 나무계단은 편하고 안전했다. 큰 어려움 없이 마당바위로 올라서니 널찍한 공터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당바위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정말 넓은 장소였다. 이미 무등산이 정면으로 조망되는 평평한 바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리 펴고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마당바위는 100여 명이 한꺼번에 머물 수 있을 정도로 광활한 장소였다. 이곳은 6·25 전쟁 당시 빨치산의 주둔지였다. 지리산과 무등산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로 산세가 험해 천연의 요새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높고 넓은 터에 많은 병력이 주둔하며 주변을 관측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마당바위 일대는 빨치산과 토벌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밀고 밀리며 수시로 주인이 바뀌던 고지전이 벌어졌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곳에 현수교를 세우며 그 당시 하늘나라로 간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로 '하늘다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월간산]덕고개에서 마당바위 삼거리로 가는 도중 본 백아산 하늘다리.
백아산 하늘다리는 최대 15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튼튼하게 설계된 다리지만 돌풍이 불면 제법 휘청거리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다리 중간에 설치한 투명 바닥창문을 통해 아래쪽을 구경할 수 있어 더욱 스릴이 넘친다. 백아산을 찾는다면 반드시 구경해야 할 명소다.
흔들리는 다리에서 스릴 만끽
호남의 명산인 무등산과 모후산이 조망되는 마당바위는 백아산 최고의 전망대다. 하지만 하늘다리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구경거리였다. 주변 조망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지만, 무엇보다도 발아래가 허공이라는 점이 남달랐다. 양 옆으로 굵은 와이어 난간이 있지만 막힌 구조가 아니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바닥의 투명한 창을 통해 보는 아래쪽 풍광은 아찔함 그 자체였다. 강심장이 아니면 도저히 밟고 지나가기 힘들 정도였다.
↑ [월간산]하늘다리 근처의 바위지대에서 본 곡성 방면의 조망.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날이다.
"어휴!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데요. 저렇게 바닥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면 100m는 훨씬 넘겠죠. 양옆으로 가리는 것이 없어서 그런지 월출산 구름다리보다 더 아찔하네요. 바람이 부니까 휘청거려서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흔들거리는 하늘다리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절터바위 방면으로 넘어가서 숨을 돌렸다. 이곳에는 이미 광주에서 온 등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식사하고 있었다. 하늘다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짬을 내서 백아산을 찾은 이들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건네는 '창평 콩엿'을 염치없이 마구 받아먹었다. 역시 산에서 만난 사람의 인심은 넉넉해서 좋았다.
하늘다리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마당바위를 거쳐 삼거리로 돌아갔다. 백아산에 왔는데 정상을 생략하고 내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정상을 밟은 뒤 백아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를 답사하기로 했다. 걷는 거리가 조금 길어지지만 바로 북면으로 돌아가기에는 산행 시간이 너무 짧았다.
↑ [월간산]하늘다리를 건너고 있는 김미경씨와 기자. 높은 봉우리 사이에 설치해 고도감이 대단하다.
"마당바위 아래 능선에 철쭉이 피면 백아산 철쭉제가 열립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행사는 여기서 멀리 떨어진 휴양림에서 진행합니다. 산 위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네요."
아직은 가지가 앙상한 마당바위 삼거리의 철쭉 군락을 지나 약수터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 남쪽으로 뻗은 제법 가파른 능선길을 밟고 정상으로 향했다. 뾰족한 바위가 불규칙하게 쌓여 있는 백아산 정상 역시 뛰어난 전망대였다. 북쪽 바로 아래 마당바위에 놓인 하늘다리가 손을 뻗으면 잡힐 듯했고,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화순의 진산인 모후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할 남쪽의 능선길도 구불구불하게 휘어지며 뻗어 있었다.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보기 좋은 장소였다.
정상에서 빵 몇 조각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곧바로 길을 재촉했다. 늦기 전에 하산하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클라이밍센터는 저녁에 나오는 회원이 많아 센터장이 자리를 비우면 아무래도 운영에 지장이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가능하면 해가 지기 전에 광주로 돌아가야 했다.
↑ [월간산]백아산 하늘다리는 150명이 동시에 건널 수 있도록 설계된 튼튼한 다리다.
정상을 지나면 산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숲으로 접어든다. 화려한 바위로 치장한 백아산 바위지대는 점점 뒤로 멀어졌다. 평범하면서도 조용한 오솔길을 따라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20분 정도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문바위 삼거리의 산불감시초소에 닿았다. 여기서 동쪽으로 휴양림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 갈려나간다. 오르내림이 심한 주능선 길이 부담이 되는 사람들은 이 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아찔한 계단길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는데 '이곳은 휴양림 구역이므로 들어오면 입장료를 받습니다'라고 쓴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산을 넘어 휴양림 지구로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온 이상 휴양림이 아닌 곳으로 내려갈 길은 없었다. 다른 하산 길이 없는데, 무조건 휴양림으로 들어오면 입장료를 받겠다는 이야기는 억지처럼 느껴졌다.
주능선을 따라 이어진 산길을 타고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별다른 조망은 없는 숲길의 연속이었다. 한동안 숲속을 걷다가 휴양림 쪽으로 툭 트인 바위지대를 거쳐 우측 산줄기로 갈려나가는 삼거리에 닿았다. 여기서 왼쪽 능선을 따라 기둥만 남아 있는 팔각정으로 거쳐 휴양림으로 내려섰다.
↑ [월간산]하늘다리 중간에 설치된 투명창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휴양림 산막지구로 내려서는 이 코스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이 다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1km 가까이 반듯한 나무계단이 거의 직선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휴양림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조성한 시설로 보이는데,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계단이 많았다. 이곳을 완전히 빠져나와 경사가 순해지는 송림에 들어가니 곧 휴양림 산막지구가 나타났다. 이제 산행은 끝났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도로를 걸어 휴양림 입구로 내려왔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협조로 동복면 개인택시 연락처를 받았다. 산행 기점인 북면 덕고개로 다시 돌아가려면 택시를 불러야 했다. 다행인 것은, 한참동안 관리사무소 앞에서 택시를 기다렸지만 입장료 이야기는 없었던 점. 단돈 1,000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기분 문제였기 때문이다. 처음도 좋았지만 마무리도 나쁘지 않은 백아산 산행이었다.
백아산 산행길잡이
하늘다리 보려면 북면 덕고개 기점이 편해
↑ [월간산]정상석을 세워둔 백아산 꼭대기는 쉬어갈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다.
산행은 남쪽 백아산자연휴양림, 서쪽 북면 소재지 부근 덕고개(아산목장 입구) 두 군데 기점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자연휴양림 쪽은 입장료를 1인당 1,000원씩 받는 까닭도 있겠지만 휴양림에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덕고개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휴양림길은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조금은 쉽게 오를 수 있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백아산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하늘다리는 마당바위에서 절터바위로 이어지는 능선 사이에 설치되어 있다. 이 다리는 해발 756m 지점의 마당바위와 절터바위 방면의 바위 능선을 연결하는 연장 66m, 폭 1.2m의 산악 현수교량이다. 아찔한 높이의 허공을 걷는 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화순군 북면의 덕고개(아산목장 입구)에서 백아산자연휴양림을 잇는 주능선 산행은 8km에 5시간 정도 걸린다.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있고 표지기가 많은 외길이라 길 찾기는 수월하다. 산길에 세워둔 안내판에 따르면 휴양림으로 하산할 경우 입장료를 받을 수도 있다.
↑ [월간산]날카로운 바위들이 톱날처럼 쌓여 있는 백아산 정상부.
백아산은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봄철 산불예방기간 동안 입산통제를 한다. 하지만 사전에 신고하고 산행을 하면 불법은 아니다. 화순군 산림소득과(061-3479-3711)에 미리 신고서를 제출하면 입산허가서를 내준다. 서류 제출과 접수는 팩스를 이용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 옥과IC를 이용해 접근하는 것이 가장 가깝다. 옥과IC에서 나와 담양군 오산면을 거쳐 화순군 북면으로 간다. 옥과IC에서 화순군 북면 덕고개까지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백아산자연휴양림은 북면을 거쳐 동복면으로 진행하다 왼쪽으로 진입로 안내판이 보인다. 북면에서 휴양림까지 약 15분.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217번 버스를 타고 백아산관광목장에서 하차한다. 하루 3회 운행. 광주시외버스 화순 북면행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하루 6회(06:05, 07:45, 09:35, 11:05, 16:45, 18:50) 운행. 요금 4,800원. 북면 이천리 버스정류소에서 덕고개까지 600m를 걸어야 한다.
↑ [월간산]백아산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코스에 설치되어 있는 끝없는 계단길.
휴양림으로 하산한 경우 북면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 북면에 택시(061-372-5522)가 있지만 운영하지 않는 날도 있다. 동복면의 유일한 개인택시(최길수, 011-606-7383)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휴양림에서 북면까지 요금 2만 원.
숙식(지역번호 061)
숙소로는 백아산 동쪽 사면에 위치한 백아산자연휴양림(374-3737)을 이용할 수 있다. 숲속의집 이용료는 7만~8만 원이며, 부대시설로 수련장과 잔디광장 등이 있다. 북면 산길 초입의 백아산관광목장(373-8080)은 한우가 유명하다. 숙박도 가능하며 눈썰매장도 갖추고 있다. 온천장을 운영하는 화순금호리조트(372-8000)에는 220여 개의 객실과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17평부터 71평까지 크기가 다양하며 회원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다.
화순의 맛집으로는 보리밥을 잘하는 벽오동(374-3799,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324-5)과 두부전문점 색동두부(375-7066,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41)를 꼽는다.
↑ [월간산]백아산 개념도
[구름다리 산행 르포ㅣ화순 백아산] 허공 걸으며 봄바람 맞으니 등골 오싹
덕고개~마당바위~하늘다리~백아산 정상~자연휴양림 산행 월간산↑ [월간산]지난해 연말 완공되어 백아산의 새로운 명물로 떠오른 구름다리. 시원한 조망한 아찔한 고도감을 느낄 수 있는 산악현수교다.
전남 화순 백아산(白鵝山·810m)은 바람 따스한 날 올라야 할 산이다. 넓은 산꼭대기는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터졌지만 바람 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마당바위와 절터바위 능선 사이에 위치한 하늘다리는 완전히 허공에 노출되어 있어 늘 바람이 심하다. 튼튼한 구조물이지만 돌풍이 불면 아무래도 불안하기 마련이다. 가능하면 날이 좋을 때를 골라 백아산을 오르는 것이 좋다.
"계속 날씨가 좋았는데, 하필이면 산에 가는 날 추워졌네요."
광주에서 합류한 익스트림클라이밍센터 김미경(44) 센터장이 차에 올라타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봄기운 완연한 산자락에서 느긋하게 걷는 산행을 기대했지만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 했다. 바람도 제법 심하게 불어 코끝이 시릴 정도로 추웠다. 그나마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맑은 하늘이 위안이 됐다. 올 겨울 들어 가장 맑은 날이었다.
광주에서 백아산은 그리 멀지 않았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20여 분 만에 곡성군 옥과IC를 빠져나온 뒤 계속 국도를 타고 화순군 북면으로 이동했다. 동광주에서 40여 분 만에 목적지인 북면 아산목장 부근의 덕고개에 도착했다. '백아산 등산로'라는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돌이 길 옆에 세워져 있어 산길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 [월간산]마당바위에서 지리산 방면을 조망하고 있는 등산객들. 이곳은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산 위의 평지다.
백아산의 첫 인상은 거칠었다. 흰 '백(白)', 거위 '아(鵝)'를 쓴 산 이름처럼 하얀 바위봉우리가 날카로운 암릉을 형성하고 있었다. 산정에 빼곡한 바위들이 뿜어내는 힘찬 기운이 그대로 느껴졌다. 게다가 높은 바위봉우리 사이에 '하늘다리'까지 걸려 있으니 더욱 강렬한 느낌을 줬다.
"오래 전에 백아산에 한 번 와봤는데, 그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산도 변하는 모양입니다. 빨리 올라가보고 싶어요."
이번 산행에 함께한 김미경씨는 백아산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래서 바쁜 시간을 쪼개 취재팀과 함께 길을 나선 것이다. 동광주IC 부근에서 실내암장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젊은 시절 늘 암벽대회 상위권에 입상하던 광주를 대표하던 여성 클라이머였다. 광주산악구조대로 활동 중인 그녀는 유치원생을 키우는 주부지만 여전히 암장에서 회원들을 지도하는 현역 산꾼이다.
↑ [월간산]마당바위에서 본 남서쪽 풍광. 왼쪽 끝에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화순의 진산 모후산이다.
"주말에 워킹 산행을 많이 합니다. 암벽 등반도 즐기지만 요즘은 산정에서 느끼는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더 좋더군요. 그런데 가까운 곳에 백아산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있고 있었네요."
마당바위 오름길의 솔숲 일품
덕고개에서 시작하는 백아산 오름길은 숲이 일품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춤을 추듯 구불거리며 가지를 뻗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빽빽한 나뭇가지를 뚫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완만한 산길 위에 어른거렸다. 쾌청한 하늘과 시원한 공기가 만들어내는 숲의 쾌적함에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 [월간산]화순군 북면 소재지에서 500m 거리의 덕고개. 하늘다리로 오르려면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무난하다.
고도가 높아지며 소나무 숲이 성글어지고 활엽수림이 나타났다. 능선 위의 작은 삼거리를 지나며 시야가 터지고 백아산 정상부의 하얀 바위지대가 한층 가까워졌다. 마당바위에 걸려 있는 하늘다리의 파란색 기둥도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힘을 내서 마지막 된비알을 치고 올라 능선 위에 섰다.
찻길에서 시작해 한 시간 남짓 걸어 오르니 백아산 정상과 마당바위 사이의 안부에 도착했다. 특유의 하얀 바위들이 병풍처럼 주변을 둘러싼 곳이었다. 고갯마루 주변에 키가 큰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마당바위를 거쳐 하늘다리로, 우측으로 직진하듯 이동하면 약수터를 거쳐 백아산 정상으로 갈 수 있다. 우리는 일단 마당바위에 올라 백아산의 새로운 명물 '하늘다리'를 밟아보기로 했다.
"예전에는 바위를 타고 올라야 했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계단길이 났네요."
↑ [월간산]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조성된 등산로를 오르고 있다.
조금 가파르긴 했지만 멍석까지 깔아둔 나무계단은 편하고 안전했다. 큰 어려움 없이 마당바위로 올라서니 널찍한 공터가 눈앞에 펼쳐졌다. 마당바위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정말 넓은 장소였다. 이미 무등산이 정면으로 조망되는 평평한 바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자리 펴고 앉아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마당바위는 100여 명이 한꺼번에 머물 수 있을 정도로 광활한 장소였다. 이곳은 6·25 전쟁 당시 빨치산의 주둔지였다. 지리산과 무등산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로 산세가 험해 천연의 요새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높고 넓은 터에 많은 병력이 주둔하며 주변을 관측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마당바위 일대는 빨치산과 토벌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밀고 밀리며 수시로 주인이 바뀌던 고지전이 벌어졌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곳에 현수교를 세우며 그 당시 하늘나라로 간 사람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로 '하늘다리'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 [월간산]덕고개에서 마당바위 삼거리로 가는 도중 본 백아산 하늘다리.
백아산 하늘다리는 최대 150명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튼튼하게 설계된 다리지만 돌풍이 불면 제법 휘청거리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다리 중간에 설치한 투명 바닥창문을 통해 아래쪽을 구경할 수 있어 더욱 스릴이 넘친다. 백아산을 찾는다면 반드시 구경해야 할 명소다.
흔들리는 다리에서 스릴 만끽
호남의 명산인 무등산과 모후산이 조망되는 마당바위는 백아산 최고의 전망대다. 하지만 하늘다리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구경거리였다. 주변 조망은 말할 것도 없이 뛰어났지만, 무엇보다도 발아래가 허공이라는 점이 남달랐다. 양 옆으로 굵은 와이어 난간이 있지만 막힌 구조가 아니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바닥의 투명한 창을 통해 보는 아래쪽 풍광은 아찔함 그 자체였다. 강심장이 아니면 도저히 밟고 지나가기 힘들 정도였다.
↑ [월간산]하늘다리 근처의 바위지대에서 본 곡성 방면의 조망.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깨끗한 날이다.
"어휴!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데요. 저렇게 바닥이 까마득하게 보일 정도면 100m는 훨씬 넘겠죠. 양옆으로 가리는 것이 없어서 그런지 월출산 구름다리보다 더 아찔하네요. 바람이 부니까 휘청거려서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흔들거리는 하늘다리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절터바위 방면으로 넘어가서 숨을 돌렸다. 이곳에는 이미 광주에서 온 등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식사하고 있었다. 하늘다리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잠시 짬을 내서 백아산을 찾은 이들이었다.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건네는 '창평 콩엿'을 염치없이 마구 받아먹었다. 역시 산에서 만난 사람의 인심은 넉넉해서 좋았다.
하늘다리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마당바위를 거쳐 삼거리로 돌아갔다. 백아산에 왔는데 정상을 생략하고 내려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정상을 밟은 뒤 백아산자연휴양림으로 하산하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를 답사하기로 했다. 걷는 거리가 조금 길어지지만 바로 북면으로 돌아가기에는 산행 시간이 너무 짧았다.
↑ [월간산]하늘다리를 건너고 있는 김미경씨와 기자. 높은 봉우리 사이에 설치해 고도감이 대단하다.
"마당바위 아래 능선에 철쭉이 피면 백아산 철쭉제가 열립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행사는 여기서 멀리 떨어진 휴양림에서 진행합니다. 산 위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네요."
아직은 가지가 앙상한 마당바위 삼거리의 철쭉 군락을 지나 약수터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 남쪽으로 뻗은 제법 가파른 능선길을 밟고 정상으로 향했다. 뾰족한 바위가 불규칙하게 쌓여 있는 백아산 정상 역시 뛰어난 전망대였다. 북쪽 바로 아래 마당바위에 놓인 하늘다리가 손을 뻗으면 잡힐 듯했고,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화순의 진산인 모후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었다. 우리가 가야 할 남쪽의 능선길도 구불구불하게 휘어지며 뻗어 있었다. 느긋하게 주변을 돌아보기 좋은 장소였다.
정상에서 빵 몇 조각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곧바로 길을 재촉했다. 늦기 전에 하산하려면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클라이밍센터는 저녁에 나오는 회원이 많아 센터장이 자리를 비우면 아무래도 운영에 지장이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가능하면 해가 지기 전에 광주로 돌아가야 했다.
↑ [월간산]백아산 하늘다리는 150명이 동시에 건널 수 있도록 설계된 튼튼한 다리다.
정상을 지나면 산길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숲으로 접어든다. 화려한 바위로 치장한 백아산 바위지대는 점점 뒤로 멀어졌다. 평범하면서도 조용한 오솔길을 따라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20분 정도 능선을 따라 내려서면 문바위 삼거리의 산불감시초소에 닿았다. 여기서 동쪽으로 휴양림 임도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 갈려나간다. 오르내림이 심한 주능선 길이 부담이 되는 사람들은 이 길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아찔한 계단길
산불감시초소에서 바람을 피하고 있는데 '이곳은 휴양림 구역이므로 들어오면 입장료를 받습니다'라고 쓴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산을 넘어 휴양림 지구로 하산하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온 이상 휴양림이 아닌 곳으로 내려갈 길은 없었다. 다른 하산 길이 없는데, 무조건 휴양림으로 들어오면 입장료를 받겠다는 이야기는 억지처럼 느껴졌다.
주능선을 따라 이어진 산길을 타고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별다른 조망은 없는 숲길의 연속이었다. 한동안 숲속을 걷다가 휴양림 쪽으로 툭 트인 바위지대를 거쳐 우측 산줄기로 갈려나가는 삼거리에 닿았다. 여기서 왼쪽 능선을 따라 기둥만 남아 있는 팔각정으로 거쳐 휴양림으로 내려섰다.
↑ [월간산]하늘다리 중간에 설치된 투명창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다.
휴양림 산막지구로 내려서는 이 코스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이 다리를 피곤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1km 가까이 반듯한 나무계단이 거의 직선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휴양림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조성한 시설로 보이는데,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계단이 많았다. 이곳을 완전히 빠져나와 경사가 순해지는 송림에 들어가니 곧 휴양림 산막지구가 나타났다. 이제 산행은 끝났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도로를 걸어 휴양림 입구로 내려왔다. 관리사무소 직원의 협조로 동복면 개인택시 연락처를 받았다. 산행 기점인 북면 덕고개로 다시 돌아가려면 택시를 불러야 했다. 다행인 것은, 한참동안 관리사무소 앞에서 택시를 기다렸지만 입장료 이야기는 없었던 점. 단돈 1,000원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기분 문제였기 때문이다. 처음도 좋았지만 마무리도 나쁘지 않은 백아산 산행이었다.
백아산 산행길잡이
하늘다리 보려면 북면 덕고개 기점이 편해
↑ [월간산]정상석을 세워둔 백아산 꼭대기는 쉬어갈 만한 공간이 마땅치 않다.
산행은 남쪽 백아산자연휴양림, 서쪽 북면 소재지 부근 덕고개(아산목장 입구) 두 군데 기점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자연휴양림 쪽은 입장료를 1인당 1,000원씩 받는 까닭도 있겠지만 휴양림에서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덕고개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휴양림길은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조금은 쉽게 오를 수 있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백아산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하늘다리는 마당바위에서 절터바위로 이어지는 능선 사이에 설치되어 있다. 이 다리는 해발 756m 지점의 마당바위와 절터바위 방면의 바위 능선을 연결하는 연장 66m, 폭 1.2m의 산악 현수교량이다. 아찔한 높이의 허공을 걷는 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화순군 북면의 덕고개(아산목장 입구)에서 백아산자연휴양림을 잇는 주능선 산행은 8km에 5시간 정도 걸린다. 이정표가 곳곳에 세워져 있고 표지기가 많은 외길이라 길 찾기는 수월하다. 산길에 세워둔 안내판에 따르면 휴양림으로 하산할 경우 입장료를 받을 수도 있다.
↑ [월간산]날카로운 바위들이 톱날처럼 쌓여 있는 백아산 정상부.
백아산은 2월 1일부터 5월 15일까지 봄철 산불예방기간 동안 입산통제를 한다. 하지만 사전에 신고하고 산행을 하면 불법은 아니다. 화순군 산림소득과(061-3479-3711)에 미리 신고서를 제출하면 입산허가서를 내준다. 서류 제출과 접수는 팩스를 이용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 옥과IC를 이용해 접근하는 것이 가장 가깝다. 옥과IC에서 나와 담양군 오산면을 거쳐 화순군 북면으로 간다. 옥과IC에서 화순군 북면 덕고개까지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백아산자연휴양림은 북면을 거쳐 동복면으로 진행하다 왼쪽으로 진입로 안내판이 보인다. 북면에서 휴양림까지 약 15분.
광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217번 버스를 타고 백아산관광목장에서 하차한다. 하루 3회 운행. 광주시외버스 화순 북면행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하루 6회(06:05, 07:45, 09:35, 11:05, 16:45, 18:50) 운행. 요금 4,800원. 북면 이천리 버스정류소에서 덕고개까지 600m를 걸어야 한다.
↑ [월간산]백아산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코스에 설치되어 있는 끝없는 계단길.
휴양림으로 하산한 경우 북면으로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 한다. 북면에 택시(061-372-5522)가 있지만 운영하지 않는 날도 있다. 동복면의 유일한 개인택시(최길수, 011-606-7383)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휴양림에서 북면까지 요금 2만 원.
숙식(지역번호 061)
숙소로는 백아산 동쪽 사면에 위치한 백아산자연휴양림(374-3737)을 이용할 수 있다. 숲속의집 이용료는 7만~8만 원이며, 부대시설로 수련장과 잔디광장 등이 있다. 북면 산길 초입의 백아산관광목장(373-8080)은 한우가 유명하다. 숙박도 가능하며 눈썰매장도 갖추고 있다. 온천장을 운영하는 화순금호리조트(372-8000)에는 220여 개의 객실과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17평부터 71평까지 크기가 다양하며 회원에 따라서 가격이 다르다.
화순의 맛집으로는 보리밥을 잘하는 벽오동(374-3799,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324-5)과 두부전문점 색동두부(375-7066, 화순군 도곡면 원화리 41)를 꼽는다.
↑ [월간산]백아산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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